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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밥을 준다는 것은카테고리 없음 2025. 1. 16. 12:59반응형
출처: Pixabay 반응형평생직장 vs 프로 이직러
평생직장. 부모님 세대엔 있었고 우리 세대에는 없는 개념인 것처럼 보인다. 평생직장은커녕 ‘프로 이직러(professional 移職-er)’나 ‘퇴준생(퇴사 준비생)’, ‘환승이직’과 같은 은어가 오히려 자연스러울 만큼 이직은 더 이상 일생에 몇 번 있을까 말까 한 이벤트가 아닌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개념이 되었다. 회사에 다니면서 동시에 이력서와 자소서와 포트폴리오와 면접을 준비하는 것, 익숙한 업무와 환경과 사람들을 떠나는 것, 이미 나 빼고 자기들끼리 친한 새로운 조직에 적응하는 것. 이 모든 어려움을 마다하지 않고 도전, 또 도전하는 데는 어떤 동력이 작용하는 걸까. 아마도 처우나 워라밸(work-life balance)이 가장 큰 이유가 되겠지만 일터에서 보내는 시간도 퇴근 후의 삶 못지않게 재미있고, 의미 있게 보내고자 하는 욕구가 큰 우리 세대에게는 결코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베네핏이 뭔가요?
과거부터 회사가 직원들을 위해 제공하는 복리후생에는 다양한 것들이 있어 왔다. 명절 상여, 건강검진, 장기근속자를 위한 휴가나 보너스, 자사 제품 할인 등은 유구한 전통이 있는 복지들이다. 이에 더해 최근에는 많은 기업들이 구인난을 극복하기 위해, 또는 직원을 다른 회사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 전에 없던 복지들을 내놓고 있는 추세다. 특히 네이버, 카카오, 비바리퍼블리카와 같은 거대 IT 기업들을 필두로 자신들만의 컬처와 그에 맞는 유니크한 복지들을 제공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남의 회사 복지에 관심이 많아졌다. 똑같이 돈 받고 일하는데 저 회사에서는 뭘 더 해 주는지 도무지 궁금해 하지 않고는 못 배기겠는 것이다. 다양한 배경과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하는 토크쇼 <유 퀴즈 온 더 블록>에서도 ‘베네핏(benefit)’은 빠지지 않고 나오는 단골 질문일 정도니까.
최근 좋ㅅ 아 아니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이직한 내 경우에도 주변으로부터 복지에 대한 질문을 심심찮게 받는다. 항상 새로운 환경이 주는 낯섦에 힘겨워하는 내향 찐따인 나에 대해 잘 아는 친구들조차도 ‘적응하기 어렵지 않냐’, ‘새로운 일은 어떠냐’, ‘사람들과는 친해졌냐’와 같은 어떤 그런 솔직히 안 궁금하더라도 안부 겸 아이스브레이킹 겸 겸사겸사 물을 수도 있는 질문들은 모두 생략한 채 도대체 네가 이직한 회사에는 어떤 복지가 있느냐고 묻는 것이다.
그것은 의외로 밥이었다.
나도 어디 가서 화폐만능주의적이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인간인데 그 어떤 현금성 복지보다 날마다 만족감을 안겨 주는 것은 잘 차려진 밥상이었다. 새로 들어간 회사는 아침, 점심, 저녁을 모두 제공한다. 아침에는 간단히 자리에 가져가서 먹을 수 있는 샌드위치, 유부초밥, 삼각김밥, 빵, 쿠키, 컵과일, 견과류, 프로틴바, 각종 우유와 두유, 주스 등이 놓여 있고 각자 본인이 먹고 싶은 음식을 자유롭게 가져다 먹도록 한다. 점심에는 한식, 중식, 일식, 양식 등 두 코스 내지 세 코스의 메뉴가 제공되고, 원하는 음식을 선택해 먹으면 된다. 이 외에도 샐러드 코스와 테이크 아웃 코스는 항상 운영된다. 저녁에는 메뉴의 선택권이 많진 않지만, 야근하는 직원들을 위한 한식이 제공된다(야근하지 않아도 먹어도 된다). 뿐만 아니라 재택근무 시에도 배달 앱을 이용하거나, 자택 근처의 제휴처에서 식권을 사용할 수 있게 한다. 한마디로 ‘네가 회사를 위해 일하는 동안 네 밥은 회사가 챙겨준다’는 것이다.
회사가 내 밥을 챙겨주는 것의 이점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첫째, 식비 지출에서 자유로워진다. 최근 런치플레이션(lunch+Inflation)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외식 가격이 연일 고공행진 중이다. 푸드테크 기업 식신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내 직장인 평균 점심값은 지난 2020년 연평균 7,567원 대비 12.8% 오른 8,537원이라고 한다. 전국에서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한 판교 지역의 경우 2020년 연평균 8,588원에서 2022년 1분기 1만687원으로 약 24.4%나 상승했다. 주 5일 출근하는 것으로 단순 계산했을 때 20일*10,687원=213,740/월이다. 이것을 내 돈 주고 먹지 않음으로 인해 연으로 치면 약 250만 원 이상을 세이브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영향 불균형에서 자유로워진다. 자취를 하는 직장인이라면, 맞벌이를 하는 직장인이라면, 아무튼 직장인이라면 7대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할 수 있는 균형 잡힌 식사를 하기가 여간 쉽지 않다. 제철 식재료나 과일은 사치다. 하지만 회사 식당에는 아마도 식품영양학을 전공하셨을 영양사 선생님께서 전문 지식을 기반으로 짠, 매일매일 다른 식단이 제공된다. 평소에 사기 어려웠던, 혹은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다양한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나의 티끌만 한 고민이나 노력 없이 주는 대로 받아먹을 수 있다는 점이 나를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건강하게 만든다.
셋째, 메뉴 선택 지옥에서 자유로워진다. 직장인들에게 주어지는 점심 시간은 대개 1시간. 그 안에 식당 선택-이동-메뉴 선택 및 주문-기다림-식사-이동-식후땡 커피까지의 전 과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상황이 이와 같이 급박하다 보니 선택지는 웬만하면 회사 근처에 위치한 식당으로 한정될 수밖에 없다. 어제 먹은 것, 그저께 먹은 것, 그 그저께 먹은 것을 제외한 메뉴 중에 고르고, 내일은 또 거기에 오늘 먹은 것을 제외한 메뉴 중에 고르고의 반복이다. 그래서 항상 비슷한 메뉴 안에서 로테이션 돌 수밖에 없고, 물리고, 지겨워지고, 또 물리고 지겨워진 메뉴 중에 골라야 하고. 하지만? 회사에서 잘 짜인 식단으로 매일 다른 밥을 준다면? 이 지겨운 로테이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회사에서 밥을 준다는 것은
2022년, 스웨덴의 접대 문화, 일명 ‘스웨덴 게이트’가 온라인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궜다. 스웨덴에서는 집에 초대한 손님에게 식사 시간이 되어도 식사를 대접하지 않으며, 그것은 손님이 아이(예컨데 어린 자녀의 친구 등) 일 경우라도 예외가 없다는 무자비한 문화가 무자비하게 알려지면서 밈이 된 것이다. 형편이 어려워 우리 가족은 굶더라도 손님만은 넉넉히 대접하는 우리 한국인들은 이 문화를 처음에는 이해를 못 하다가, 믿지 못하다가, 조롱하다가, 분노했다.
한국인에게 ‘밥’이 어떤 의미인지는 이 글에서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우리는 ‘Hi’, ‘How are you?’, ‘See you’를 ‘식사하셨어요?’, ‘밥 먹었어?’, ‘밥은 먹고 다니냐?’, ‘언제 밥 한번 먹자’라고 말하는 민족이다. 그렇기에 회사에서 밥을 준다는 것은 앞에서 언급한, 합리성에 기반한 세 가지 이유는 차치하더라도 그저 식대를 제공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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